법궤 귀환의 역사
01. 아벡 전투 - 법궤를 빼앗기다 (BC 1102)
이스라엘이 블레셋의 침략을 받는 아벡 전투에서 대패하자(사무엘상 4장) 이스라엘의 장로들과 엘리 제사장은 하나님께 묻지 않고 전쟁터에 법궤를 가지고 가서 승리하고자 했다.
하지만 도리어 하나님의 법궤는 블레셋에 빼앗기고, 3만 명의 이스라엘 장정들이 죽는 참혹한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
02. 블레셋 땅에 머물렀던 기간 (7개월)
법궤는 블레셋 땅에 일곱 달을 머물렀다(사무엘상 6장). 하지만 법궤로 인해 블레셋에 큰 환난이 계속되었고, 마침내 블레셋 사람들은 새 수레를 만들어서 법궤를 싣고 이스라엘에 되돌려 보내게 된다, 되돌아온 법궤는 기럇여아림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으로 옮겨진다.
03. 미스바 전투 (BC 1082)
사무엘 선지자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스바에 모여 금식하고 기도할 때,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치러 왔다. 사무엘 선지자가 하나님께 기도하고 번제를 드리니 하나님께서 큰 우레를 발하여 블레셋을 무찌르셨다. 이 미스바 전투는 빼앗긴 법궤가 기럇여아림 아비나답 집에 있은 지 20년 됐을 때 일어났다(사무엘상 7:2).
04. 사울왕의 즉위 (BC 1050)
사무엘 선지자는 미스바 전투 후 해마다 벧엘과 길갈과 미스바를 순회하며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그 후 사무엘 선지자는 주전 1050년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 왕이 되게 하였다(사무엘상 10:1). 사울왕은 40세에 기름 부음을 받았고, 40년을 통치했다.
05. 다윗왕의 즉위 (BC 1010)
사울이 죽은 후 다윗은 헤브론에서 왕이 되었고, 헤브론에서 7년 6개월을 통치한다.
06. 다윗왕의 예루살렘 통치 시작 (BC 1003)
다윗은 예루살렘으로 옮겨 통치를 시작한 후 법궤를 다윗 성으로 옮기려 했다. 3만 명을 엄선하여 데리고 친히 비알레유다(기럇여아림)으로 내려갔다. 법궤를 새 수레에 싣고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와 아효가 수레를 몰아 예루살렘으로 향할 때, 수레가 나곤의 타작마당에 이르자 갑자기 소들이 날뛰므로 법궤가 땅에 떨어질 위험에 처하게 된다. 이때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자 즉사하고 만다. 하나님께서 웃사와 충돌하시므로 다윗이 분하여 그곳을 ‘베레스 웃사’라고 칭하게 된다.
07. 오벧에돔의 집에 머문 기간 (3개월)
웃사가 죽자 다윗은 하나님의 궤 옮기기를 두려워했으며, 하나님의 궤는 치우쳐서 오벧에돔의 집으로 향했다. 법궤가 오벧에돔의 집으로 치우친 것은 하나님의 섭리이자,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로서 사람이 개입할 수 없는 것이었다.
08. 다윗성으로의 귀환 (BC 1003)
하나님의 궤가 오벧에돔의 집에 머물러 있는 석 달 동안 오벧에돔의 온 집은 큰 복을 받았다. 이 소문을 들은 다윗은 이번에는 법궤를 하나님의 말씀대로 어깨에 메게 하여 다윗 성으로 옮겨 왔다. 하나님의 법궤를 잃어버린 사사시대의 영적 암흑기가 완전히 끝나는 순간이자, 온 이스라엘이 법궤를 모심으로 하나님을 향하게 되는 새로운 역사 출발의 순간이다.
하나님의 법궤를 대하는 여러 사람들과 여러 결과
01. 엘리 제사장
블레셋과의 아벡 전투에서 법궤를 가지고 나가서 승리하려고 했다. 법궤는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곳으로서 하나님께 먼저 기도하고 물어봐야 했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부적처럼 임시방편으로 가지고 나가서 싸우려했다. 그 결과 두 아들 흡니와 비느하스가 아벡 전투에서 한날한시에 죽고, 자신도 목이 부러져 죽는다. 며느리도 ‘이스라엘에게서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음’(이가봇)을 고백하며 죽는다. 법궤를 미신처럼 대했던 엘리 제사장의 가문의 마지막은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이가봇’의 시대로 끝을 맺는다.
02. 사울 왕
사울왕은 40세에 왕이 되어 40년간 이스라엘을 통치하면서 법궤 찾을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법궤가 없으므로 1년에 한 번씩 지성소에 들어가서 대제사장이 죄를 사하는 속죄제도 없었다. 예배도, 말씀도 없이, 입으로만 하나님을 찾고 실제로는 자기가 편리한 대로 사는 시대였다. 법궤에 무관심했던 사울은 블레셋과의 길보아산 전투에서 세 아들과 함께 죽었다. 중상을 당하고 자기 칼에 스스로 엎드러짐으로 비참한 종말을 맞이했다.
03. 웃사
웃사는 법궤가 나곤의 타작마당에서 땅에 떨어질 위험에 처했을 때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드는 순간 즉사했다. 하나님께서는 법궤는 레위 지파 중 성별된 고핫 자손이 어깨에 메고 운반하되 법궤를 만지면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웃사가 법궤를 만진 것은 율법을 어기는 죄였다. 하나님의 법궤를 보호하려고 했다지만 그 방법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이면 반드시 보응을 받게 되는 것이다.
04. 다윗
1차로 법궤를 다윗 성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웃사의 죽음을 목격했다. 2차로 옮겨올 때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법궤를 어깨에 메게 하여 다윗 성으로 옮겨 왔다. 법궤가 다윗 성으로 올라올 때, 다윗은 너무 좋아서 왕복을 벗고 베 에봇을 입은 채 어린아이처럼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사무엘하 6장 14절의 “춤을 추는데”라는 표현은 히브리어 ‘카라르’로서, 계속적으로 열정적으로 춤을 춘 것을 가리킨다. 이는 법궤를 옮기게 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격의 표시이며, 자신이 왕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이심을 고백하는 행동이다. 법궤가 돌아온 후 이스라엘 온 나라가 부흥하고, 모든 농사가 잘되고, 이스라엘 전 백성들에게 병이 없는 복을 받게 된다.
05. 미갈
법궤가 돌아올 때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춤을 추며, 모든 악기를 동원하여 즐거워했다. 그러나 다윗왕의 아내이자 사울왕의 딸인 미갈은 아무런 감격도 기쁨도 없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이 춤추는 것을 보고는 심중에 업신여겼다. 왕다운 체통을 지키지 못했다고 다윗을 책망하기까지 한다. 빼앗긴 법궤가 돌아오는 구속사적 경륜 속에서 엄청난 감격의 순간을 깨닫지 못하고, 다윗을 업신여긴 것은 하나님을 업신여긴 죄였다. 그 결과 미갈은 죽을 때까지 자식이 없었다.
06. 오벧에돔
나곤의 타작마당에서 웃사가 죽은 후, 법궤는 오벧에돔의 집으로 치우치게 된다. 법궤가 다윗성으로 가려하지 않고 기울어져서 오벧에돔의 집으로 가기를 기뻐했던 것이다. 사무엘상 6장 10절에 등장하는 ‘치우쳐’는 히브리말로 ‘나타’인데, 이는 ‘기울다, 뻗다, 회피하다’라는 뜻이다. 즉 법궤 스스로가 방향을 정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오벧에돔의 모든 가족들의 마음을 아신 것이다. 오벧에돔이 얼마나 법궤를 사모하고 귀중하게 여기며 두렵게 모실지를 아신 것이다. 그 결과 법궤가 머무는 3개월 동안 온 나라에 소문이 날 정도로 온 집이 복을 받았다. 다윗은 그에게 ‘문지기’와 ‘악기 연주자’라는 중대한 두가지 직분을 맡겼고 오벳에돔의 자손들은 다 능력이 있어 그 직무를 잘 수행하는 자들이었다. 오벧에돔이 받은 축복으로 그 자자손손까지 번창하게 되었다.
[출처] 100년만의 법궤 귀환의 현장 |작성자 백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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