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에서 가장 기록연대에 대한 논쟁이 붙는 서신 중의 하나가 갈라디아서입니다.
이 서신서의 기록 연대는 누구를 수신인으로 하는가와 성경에 기록된 내용들의 시간적인 정열에 따라 달라집니다. 이러한 불확실성은 또한 '갈라디아'라는 용어가 문화 및 지리적 의미와 정치적 의미로 동시에 사용되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1) AD 49년(1차 선교여행 후)
'남 갈라디아 이론'에 따르면 바울은 로마의 행정구역으로서 더 넓은 정치적 의미를 지닌 '갈라디아'를 언급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편지를 받은 교회들은 바나바와 함께 한 그의 1차 전도 여행 때에 복음을 전했던 도시들 속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이다(행 13:13-14:23). 이는 예루살렘 공의회가 있기 바로 전이며(행 15), 그렇다면 2장 1절에서 10절에 기술된 예루살렘 방문은 분명히 사도행전 11장 27절부터 30절 기근을 돕기 위한 방문이었으며, 따라서 갈라디아서는 AD 49년(1차 선교여행 후 예루살렘 공의회 이전)에 기록되었을 것이라는 견해이다.
2) AD 53년(2차 전도여행 중)
갈라디아서 4:13절 '처음에' 라는 말을 근거로 바울은 최소한 두 번 이상 갈라디아 지역을 방문했음을 알 수 있다. 바울의 두 번째 갈라디아 방문은 사도행전 18:23의 갈라디아 지역 방문 내용과 동일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고린도를 떠나 에베소에 잠시 머물다 안디옥으로 내려가고 얼마 있다가 갈라디아로 가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그렇기 때문에 갈라디아서는 사도행전 15장의 예루살렘 공의회 이후에 쓰여진 것이고, 바울이 1년 반 동안 머물던 고린도 지역의 사역후인 A.D.53년경에 썼다는 결과가 도출된다
3) AD 53~56년(3차 선교여행 중)
'북 갈라디아 이론'은 바울이 이전에 더 제한된 의미의 갈라디아를 말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이론에 따르면 갈라디아 교회는 바울이 1차 전도 여행 때에 방문했던 도시들의 북쪽에 위치해 있다. 바울은 2차 전도 여행 때에, 드리아로 가는 길에 민족적 배경에서 갈라디아를 방문했을 것이다(행 16:6). 3차 전도 여행에서 바울은 자신이 세운 갈라디아 교회를 다시 방문했으며(행 18:23), 에베소(AD 53-56) 아니면 마케도니아에서(AD 56) 이 편지를 썼다.
각각의 성경적인 견해와 주장이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필자는 이러한 모든 견해들과는 약간 다른 갈라디아서의 기록연대를 '1차 선교여행 후 행 15장의 예루살렘 공의회 후, 2차 선교여행 전'의 기록으로 보고 있습니다. 실제 로마 행정구역의 이름이었던 갈라디아에 대한 언급(갈 1:2), 바울이 1차 선교여행에 동행한 바나바에 대한 언급과 14년 후에 예루살렘에 간 것(AD 36년, AD 33년 회심 후 3년만에 예루살렘 방문 ~ AD 50년, 1차선교여행 후 2차 선교여행 전에 예루살렘 공의회 참석)에 대한 내용(갈 1:8, 갈 2:1), 그리고 예루살렘 공의회(행 15장)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 함께했던 바나바와 베드로의 외식에 대한 책망(갈 2;11-14) 등의 이유로 1차 선교여행 후 예루살렘 총회를 마치고 안디옥에서 유할 때(행 15:35) 기록한 것으로 수용합니다(A D 50년)
이는 누구의 견해도 아니며 필자가 여러 주석을 참조하고, 수십 번 성경을 통독하면서 하나님께 물으면서 스스로 답을 찾아낸 것이기에 다른 이들과는 약간의 견해차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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